Good Omens

[크롤아지/ 번역] Show/Tell

오역/ 의역 주의

작가: walkalittleline

원문링크: https://archiveofourown.org/works/19108483

* 작가님께 번역 허락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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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라파엘이 사랑에 빠지는 데엔–몇 달정도는 빼거나 더해서–약 5945년이 걸렸다. 더 정확하게는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깨닫는 데엔 말이다. 지금에 와서야 그는 어쩌면 훨씬 전부터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지만 단지 깨닫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됐건, 수많은 개체 중에서도 악마 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심지어는 웃기기까지 한 일이었다. 그리고 하필 그 수많은 악마들 중에서도 크롤리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글쎄, 그건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여기엔 상호작용의 문제도 있었다. 그는 악마가 사랑에 빠지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알지 못했고, 하물며 사랑을 하고 싶어할 것인지는 더더욱 알지 못했다. 크롤리는 항상 인간들이 그들의 감정에 좌우되어 삶을 사는 것을 보고 얼마나 짜증나고 귀찮은 일인지 얘기하곤 했다. 물론, 그는 크롤리가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크롤리는 웃음을 터뜨리거나 누군가를 조롱하기도 했고, 그의 그 가증스러운 자동차에게 전혀 무심하지 않은 목소리로 칭찬을 늘어놓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사랑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사랑은 더럽게 복잡했고 점점 높이 쌓여 아지라파엘이 아무리 무시하려고 해도 자신을 알아채길 요구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육체가 (천사라는 입장을 고려했을 때) 아주 부적절한-불편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반응 을 하게 만들었다. 크롤리의 이름만 들어도 손바닥에 땀이 난다거나,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는 것은 아주 짜증나는 일이었다. 크롤리는 가끔 참아줄 수가 없었고, 빈정거렸으며, 어딜 가든 어슬렁 거렸고, 아지라파엘의 옷과 책들, 그리고 와인과 음식에 대한 사랑을 거침없이 조롱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80년의 세월과 한 번의 좌절된 아마겟돈이 지나도록 그는 여전히 지독하게-애잔하게-어쩌다보니 절친이 된 남자에게 빠져있었다.


크롤리는 함께 지구를 떠나자고, 아주 오래 전 그가 창조를 도왔던 성운으로 가자고 그에게 권유했다. 아지라파엘은 너무나도 ‘그래’라고 대답한 뒤 그와 함께 가고 싶었다. 어쨌든 그가 참여하고 싶지 않은 전쟁에서 큰 활약을 할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안에 있는 낭만이 크롤리와 함께 우주에서 영원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 만큼, 이곳엔 크롤리와 함께 했던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더 이상 그 어떤 점심 약속도, 공원에서의 대화도, 그의 그 빌어먹을 자동차에 타는 일도 없을 것이었다. 그가 지구에서 너무나도 즐겼던 이러한 순간들의 상실에 대한 생각은 아마겟돈을 멈춰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그것을 멈췄다. 아니, 적어도 멈추는 것을 도왔다고는 할 수 있겠다.


지금, 그들은 가까운 미래에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다. 아지라파엘이 처음으로 이런 데이트가 더 많기를 바라게 된 리츠에서의 점심이 그 중 하나였다. 그는 이게 데이트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들이 지금 데이트를 하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한심하지만, 그의 손이 접시를 지나 크롤리의 손을 잡는다거나, 테이블 아래서 장난스럽게 발을 부딪힌다거나 하는 상상을 하면 안 되리란 법은 없지 않은가. 식당을 나와 공원을 향해 정처없이 걸으며, 아지라파엘은 문득 정말로 그런 행동을 했으면 크롤리가 어떻게 반응했을지를 상상했다. 아마도 웃음을 터뜨리거나, 입꼬리만 올려 미소지은 채 무슨 의도인지 파악하려는 듯 눈썹을 들어올리고는 어두운 선글라스 뒤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봤을 것이다.


그는 걷는 내내 옆에 있는 남자에게 눈길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며 단정하게 앞으로 모은 손을 풀지 않았다. 크롤리는 언제나 목적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는 듯 어슬렁거리며 걸었다.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나른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고양이, 아니 뱀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지라파엘은 어떠한 측면에선 그의 ‘일’이 그의 적성에 참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크롤리는 단순히 움직이기만 해도 유혹으로 다가왔으니까. 짜증나게도 그랬다. 그는 크롤리가 과연 그렇게 누군가를 유혹한 적이 있을지 궁금했다. 그 생각만으로도 아지라파엘의 안에서 익숙하지 않은 불쾌한 무언가가, 질투라고도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피어올랐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크롤리는 심지어 말할 때조차 똑같이 나른하고 어슬렁거리며 말했다.


“음?” 아지라파엘이 살짝 허리를 피며 그를 올려다 보았다. “아무것도 아냐.”


“근데 표정이 왜 그래?” 악마가 턱으로 그의 얼굴을 가리키며 물었다.


“내 표정?” 그는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당황스럽다는 듯 자신의 뺨을 가볍게 문질렀다. “내 표정이 뭐가 어때서?”


“지금은 괜찮은데,” 크롤리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까는 완전-” 그는 아지라파엘의 표정을 흉내내려는 것처럼 얼굴을 구겼다. “우울해 보였다고.”


아지라파엘은 혀를 차며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말라는 것처럼 웃음을 내뱉었다. “오, 제발,” 그는 고개까지 저으며 말을 이었다. “난 그런 적 없어.”


“그랬어!” 크롤리가 주장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말이야! 엄청 심각해보이기까지 했다고.”


아지라파엘은 뺨으로 몰리는 열기가 많이 티나지 않기를 바랐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야?”


천사는 결국 발끈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었어.” 그리곤 퉁명스럽게 덧붙였다. “그리고 난 우울해한 적 없어.”


크롤리의 입에선 미심쩍은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몇 분동안 조용히 걸을 수 있었다. 그가 다시 입을 열기 전까진.


“설마 아직도...?” 갑자기 떠오른 의문에 눈썹이 치켜 올라간 채, 그가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위쪽을 가리켰다.


그는 언제나처럼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아지라파엘은 그것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이유로는 첫째, 얼굴의 반이 가려져 표정을 알아볼 수가 없었고, 둘째, 그는 크롤리의 눈을 보는 것을 정말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크롤리의 눈은 자신의 눈과는 전혀 달랐고, 여느 악마의 눈처럼 차갑고 공허하지도 않았으며,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이 공존하는 눈이었다. 크롤리는 많은 면에서 독특했지만, 아지라파엘은 그 눈이야말로 크롤리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야!” 아지라파엘은 크롤리가 계속 물고 늘어지자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을 그대로 내뱉었다.


“있잖아, 점심을 먹었으니 술을 한 잔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아지라파엘은 자신의 목소리가 당황한 것처럼 들리지 않기를 절실히 기도했다. “정말 멋진 샤또 슈발 블랑 이 몇 병 있거든, 원한다면-”


“지금 그거 날 유혹하는 건가?” 크롤리가 끼어들며 말을 가로챘다. 지나치게 즐거워보이는 얼굴이었다.


“글쎄,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 도도하게 콧방귀를 뀌는 것도 잠시, 그의 목소리가 점점 사그라들었다. “...성공인 거야?”


“천사야, 네 비싼 술을 같이 마시자고 하는 데 날 설득할 필요는 없어.” 악마가 능글능글 웃으며 대답했다.


크롤리의 입에서 나온 ‘천사‘라는 단어에 그의 가슴 속에 있는 무언가가 기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특별한 뜻이 없다는 것은 알지만, 인간들이 자신들의 중요한 사람에게 그 단어를 쓰는 것을 들은 이후로 그는 크롤리가 정말 그런 의미로 저를 부른다면 어땠을까 상상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도 이게 바보같은 짓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만 둘 수가 없는 걸 어쩌겠는가.


그는 오후 내내 세 잔의 와인을 마신 후에야, 크롤리의 신경을 돌리기 위해 이 방법을 택한 건 아주 멍청한 짓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식사와 샴페인을 함께 나눈 것만으로도 상황은 충분히 나빴다. 하지만 단 둘이서, CLOSED로 팻말이 돌아간 서점의 뒷방에 틀어 박혀 매우 오래되고 비싼 와인을 마시는 것은 훨씬, 훨씬 더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마지막으로 이랬을 때와는 전혀 달랐으니까. 그때 아지라파엘은 곧 다가올 멸망에 초조해 하느라 다른 것을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그때는 아니었지만, 그들에게는 이제 앉아서 술을 마시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무엇이든 길게 이야기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아지라파엘의 머릿속에서 외치고 있는 생각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가 바로 현재 파괴될 위험이 없는 세계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구구절절 늘어놓고 있는 남자와 가망 없이 사랑에 빠져있다는 것이었다.


“일본에 안 간지 몇 백년 은 된 것 같아.” 크롤리가 소파에 늘어진 채 입을 열었다. 잔을 든 손이 공중에서 흔들리자 와인이 잔 안에서 출렁였다. 그러다 갑자기 일어나 앉더니, 흐느적거리며 아지라파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일본에 말하는 변기가 있는 거 알고 있었어?”


그가 즐거워 보이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며 다시 소파로 털썩 드러누웠다.


아지라파엘은 대답대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테이블 위에 턱을 괸 채, 그는 크롤리가 말할 때마다 눈부시게 웃으며 열렬히 바라보았다. 그는 마치 온 몸의 근육을 조이던 긴장이 한 순간에 사라진 것처럼 몽롱하고 늘어지는 기분을 느끼며 와인 잔의 가장자리를 따라 가볍게 손가락을 문질렀다.


“너는 어때?” 선글라스 너머 크롤리의 시선이 궁금하다는 듯이 그에게로 향했다. “보나마나 어딘가 고급스러운 곳이겠지, 응? 넌 언제나 프랑스를 좋아했잖아.”


“오, 잘 모르겠는 걸.” 아지라파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멍하니 잔을 기울여 중심을 잡고는 그것이 천천히 회전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딱히 생각해 본적이 없어서.”


“그럼 지금 생각해 봐.” 크롤리가 소파 팔걸이에 등을 기대고 한 손을 배 위에 올리며 말했다. (다른 손은 여전히 거의 비어버린 잔을 쥐고 있었다.) “그 고생을 했는데 우리도 길고 멋진 휴가 정도는 가야 마땅하지.”


“우리?” 아지라파엘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의 잔이 작게 달칵- 소리를 내며 테이블 위에 바로 섰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게 무슨 소리냐니 그게 무슨 소리야?” 혼란스러운 건 악마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내가 말한 그대로야.”


“아니, 내 말은, 그게-” 그는 목을 가다듬고, 와인으로 인해 완전히 엉망이 된 머릿속을 정리하려 애쓰며 잠깐동안 머뭇거렸다. “...같이 가자고?”


“그럼?” 크롤리는 무슨 당연한 걸 묻냐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 아지라파엘이 숨을 삼켰다. “그게, 난 정말-, 나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못 해봤어서. 같이... 가는 거 말야.”


“너 말고 나랑 같이 갈 사람이 또 누가 있어?” 크롤리가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단숨에 잔을 비우더니, 천사를 향해 빈 잔을 흔들었다.


“글쎄,” 아지라파엘은 살짝 비틀거리며 잔을 다시 채워주기 위해 일어났다. “우리가 같이 여행을 한 적은 없잖아. 그것보다는 좀 더... 우연히 마주친 거에 가깝지.”


“내 말은, 네가 같이 가기 싫다면야 안 가도-”


“아니, 아니야. 내가 언제 가기 싫다고 했어?” 그는 단호하게 말하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병이 기울고 크롤리의 잔 안으로 붉은 와인이 쏟아졌다.


“그래서, 같이 가겠다는 거지?” 크롤리가 한 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아지라파엘은 진심으로 저 바보같은 선글라스를 벗겨버리고 싶었다.


“그-글쎄, 생각을 좀 해 봐야...” 잔이 가득 찼을 때 쯤 아지라파엘은 따르는 것을 멈췄다. 와인 병이 거의 바닥을 보였다.


“생각할 게 뭐가 있어?” 악마가 답답하다는 듯이 물었다. “나랑 같이 갈 거야, 말 거야?”


아지라파엘은 입을 열었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물론, 그도 가고 싶었다. 하지만 크롤리와 낮이고 밤이고 함께 있으면서 그의 심장이 과연 버텨줄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어쩌면 그들이 함께 있을 때 늘 그랬던 것처럼 그 지역의 좋은 음식과 술을 마신 후에 어느 오래된 여관에서 한 방을 쓰게 될 지도 몰랐다. 와인 때문인지, 아니면 그를 둘러싼 조금은 답답한 오래된 종이 냄새와 크롤리의 온기 때문인지, 아지라파엘의 가슴에 어떠한 희망과 기쁨이 퍼져 나갔다.


네 냄새가 어떤지는 알아


“응?” 크롤리가 기대하는 투로 대답을 재촉했다.


“좋아.” 미처 막기도 전에 아지라파엘의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내 말은-그러니까, 같이...같이 가는 게 좋겠다고.”


“그게 그렇게 어려웠어?” 크롤리의 나른한 목소리가 늘어졌다. 그는 와인 병에 자신의 잔을 한 번 쨍 부딪히고는 술을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아지라파엘은 병 주둥이에 손가락을 꼬며 초조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와인 탓인지 갑자기 대담해진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벨제붑과 다른 악마들을 속이기 위해 크롤리의 모습으로 있다보니 그의 뻔뻔함이 옮은 걸지도 몰랐다.


“왜야?” 질문에 크롤리의 시선이 그를 향하자 아지라파엘은 저도 모르게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뭐가 왜야?”


“왜 나랑 같이 가고 싶어?” 아지라파엘이 간결하게 말했다.


“그냥 뭐... 알잖아.” 크롤리가 애매하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뭔데, 크롤리.” 아지라파엘이 강하게 다시 한 번 반복했다.


“내가 굳이 내 입으로 말해야겠어?” 크롤리가 얼굴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아지라파엘이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는 말을 잇기 전 다시 한 번 와인을 삼켰다. “왜냐면... 너랑 같이 있는 게 좋으니까.” 마치 입 밖으로 내선 안 될 말을 한 것처럼 그는 얼굴을 구기며 과장스럽게 손을 휘적였다.


“...정말?”


“오, 제발.” 크롤리가 답답해하며 말했다. “널 싫어했으면 내가 너랑 6000년씩이나 붙어다녔을 것 같아? 너랑은 다르게, 난 좋아하면서 싫어하는 척은 안 하거든.”


아지라파엘은 훅 들어온 공격에 움찔했지만 자세를 풀지 않았다.


“그치만, 다른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거 아냐.”


크롤리는 그에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한 시선을 던졌다.


“누가 있는데?” 그가 비웃으며 말했다. “저 아래엔 아무도 없어, 특히 지금은 더더욱. 뭐, 설마 내가 인간이랑 놀러 다니기라도 할까 봐? 그 섀드웰 병장이랑?” 악마는 몸서리를 치며 마지막 부분을 덧붙였다.


그제서야 아지라파엘은 깨달았다. 그에겐 많은 지인들, 동료들이 있었지만 가장 친하고 오래된 친구는 크롤리였으며, 듣자 하니 크롤리도 똑같이 그를 그렇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지라파엘은 상상했다. 그렇다면 혹시... 하지만 그럴 리가 없지. 와인을 너무 많이 마신 게 틀림없었다.


“크롤리?”


크롤리가 한숨을 쉬었다. “뭔데?”


“너는...넌 사랑에 빠져 본 적이 있어?”


잔을 반쯤 입술에 갖다 댄 채, 크롤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도대체 그건 왜,” 그가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물어보는 거야?”


“그냥 궁금해서.” 아지라파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는 너는?” 크롤리가 그를 바라보려 고개를 돌렸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지라파엘은 저 웃기지도 않은 선글라스를 크롤리의 얼굴에서 벗겨버리고 싶었다.


“있다면 어떡할 건데?” 아지라파엘이 방어적으로 대답하며 병을 테이블에 내려놓기 위해 뒤쪽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뭐?!” 크롤리가 울부짖었다. 그가 늘어져 있던 자세에서 일어나 똑바로 앉자 소파가 삐걱거렸다. 테이블에 앉아 책 끄트머리를 만지작대는 동안 아지라파엘은 등이 뚫릴 것 같은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대체 누구랑? 얼마나 오래된 건데?”


아지라파엘이 첫 번째 질문은 무시하며 말했다.


“오... 한 80년 정도 된 것 같은데, 내 생각엔.” 그는 떨지 않기 위해 두 손을 맞잡았다. 이상하게도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80년- 잠깐만.”


크롤리가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천사는 떨리는 숨을 내쉬며 크롤리에게서 받게 될 혐오, 거절, 어쩌면 큰 비웃음을 기다리며 두 눈을 감았다. 등 뒤로 크롤리의 손이 어깨에 와 닿았다. 천사는 순순히 저의 어깨를 잡고 뒤로 돌리는 손에 몸을 맡겼다. 마주 본 악마는 지금 이 모든 것을 파악하려 노력하는 중이라는 듯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기울이고 있었다.

곧 깨달음이 그의 얼굴에 스쳐 지나갔고, 그가 깊게 심호흡을 한 뒤 고개를 흔들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크롤리는 옆으로 약간 비켜 서서 잔을 테이블 위에 두었다. 그리고 선글라스도 벗어 그 옆에 던지듯이 내려놓고는 피곤한 듯 눈을 문질렀다.


“나도 알아,” 아지라파엘은 곧 다가올 거절이 자신이 생각한 것만큼 아프지 않기를 바라며 말을 꺼냈다. “나도 안다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나는-”


“오, 제발 이번 한 번만이라도 좀 닥쳐봐.” 크롤리가 낮게 으르렁대더니 단호한 얼굴로 그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는 천사의 옷깃을 움켜 쥐고는 눈 높이가 맞을 때까지 위로 끌어 당겨 아지라파엘이 까치발을 들고 서게 만들었다. 코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웠다.


“너,” 크롤리가 으르렁거렸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똑똑하면서 바보같을 수가 있어 ?”


아지라파엘은 입을 열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크롤리는 그에게 키스했다. 코로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옷깃을 당겨 서로의 입술을 부딪혔다. 그는 너무 빨리 입술을 떼었고 아지라파엘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이 바보같은, 바보같은-


그는 아지라파엘이 제대로 설 수 있도록 내려 놓으며 다시 그에게 키스했고, 옷깃 대신 얼굴을 감싼 크롤리의 손은 그들이 한 치 틈도 없이 안정적으로 키스할 수 있도록 천사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몇 초가 지나고 크롤리가 뒤로 물러났다. 시선은 절대 아지라파엘의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였다.


“오,” 아지라파엘이 겨우 숨을 쉬었다.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음... 이건 예상 밖인걸.”


크롤리가 갑자기 짜증난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아지라파엘의 쇄골을 세게 찔렀다.


“80년이라고?!” 그가 쏘아붙였다. “80년 동안 할 말이 아무 것도 없었어?”


“내가 뭐라고 말해야 했는데?” 아지라파엘이 대꾸하고는 찔린 자리를 문지르며 눈을 흘겼다.


“정말 아무 말도 ?” 크롤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팔을 공중에 던졌다.


“그러니까 네가–, 네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얘기야 지금?” 아지라파엘이 확실히 정리 해야 할 필요를 느끼며 말했다.


“내가-, 아니 너 지금-” 크롤리가 눈을 감고 미간을 짚으며 말을 멈췄다. “그러니까 네 말은,” 무섭도록 차분한 목소리였다. “모르고 있었다는 거야?”


“모르고 있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아지라파엘은 매 순간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됐는데?”


“우리가 언제 처음 만났지?” 크롤리가 간단하게 말했다.


“에이, 장난치지 말고,” 아지라파엘이 전혀 믿지 않는 투로 말했다. 재밌다는 듯 그의 얼굴에 걸려있던 미소는 크롤리가 아무 말 없이 그를 쳐다보기만 하자 곧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오... 정말 진심이구나.”


“6000년이야, 아지라파엘.” 그의 목소리는 전에 들어본 적 없이 부드러웠다.


6000이라고.” 그가 거의 고통스러워 보이는 표정으로 다시 한 번 반복했다. “내가 같이 떠나자고까지 했잖아. 정말 몰랐어...?”


“미안해,” 아지라파엘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는 약간 짜증을 내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너도 아무 말도 안 했잖아, 그런데 내가 어떻게 알겠어?”


크롤리가 한숨을 쉬었다. 그는 잠깐 망설이다가 아지라파엘의 두 손을 자신의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의 손가락은 놀라울 정도로 따뜻했다.


“그래도 보여주긴 했잖아, 안 그래?” 눈은 그들의 손에 고정한 채, 그는 아지라파엘에게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네가 그냥...” 그는 고개를 젓고는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아지라파엘을 쳐다보았다. “다시 한번 너한테 키스할 거야,” 그가 말했다. “그리고 이번엔 너도 나한테 키스해 줘야 해, 이해했어?”


아지라파엘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장이 기대로 빠르게 뛰었다.


크롤리는 이번엔 부드럽게, 얽혀있던 손을 풀어 아지라파엘의 허리를 잡아 가까이 끌어당기며 키스했다. 벌어진 그의 입술이 처음엔 조심스럽게 아지라파엘의 아랫입술과 맞물렸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짧게 안달난 소리를 내더니 전보다 더 세게, 더 탐욕스럽게 키스했다. oh, yes, 그건 아주, 아주 좋았다. 그가 고개를 한 쪽으로 기울여 더 단단히 입술을 눌렀다. 그리곤 아주 잠깐 동안 입술을 떼어, 아지라파엘의 입술에 뜨겁고 격렬한 숨을 내쉬고는 다시 입술을 부딪혔다.


아지라파엘은 약속대로 크롤리에게 키스를 되돌려주었다. 어지러울 정도였다. 그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크롤리의 셔츠 앞섶을 그러쥐었다. 크롤리가 전보다 더 가까이 다가왔고, 아지라파엘은 계속 그와 키스하기 위해 고개를 약간 뒤로 젖혀야 했다. 그는 새롭게 발견한 크롤리와의 키 차이(항상 짜증난다고 생각했던)의 진가를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크롤리가 입술을 떼곤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떨어질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는 여전히 가까이 붙어 선 채 자신의 이마를 아지라파엘의 이마에 맞대었다.


천사야 ,” 그가 눈을 감으며 속삭였다. 그 목소리엔 아지라파엘을 자동적으로 미소짓게 만드는 애정이 담겨있었다. 그는 이 단순한 키스 한 번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몽롱해진 자신이 경박하고, 가볍고, 약간은 바보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불러주는 게 좋아?” 크롤리가 그의 면전에다 대고 능글능글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게, 내 말은, 딱히 그런 게-”


“시끄러워, 천사,” 그는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크고 애정 어린 미소였다.


아지라파엘은 삐져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 한 채,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제 어쩌지?” 그가 무심코 크롤리의 셔츠를 쓸어 내리며 물었다. 구체적 계획을 묻는다기 보다는 추상적인 의미의 질문에 가까웠다. 물론, 크롤리가 지금 당장 원하는 게 뭔지 몹시 알고 싶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우선,” 아지라파엘의 허리에 놓여있던 크롤리의 손이 척추를 쓸어올리며 미끄러져 올라갔다. 그의 손길을 따라 기분 좋은 떨림이 천사의 몸을 타고 흘렀다. “저기 있는 소파로 널 데려가서 엄청나게 키스할 거야. 그리고 내가 특별히 좀 악마 다운 일을 해야겠단 기분이 들면, 이것보다 더 죄스러운 짓을 하자고 유혹하려 할 지도 모르지.” 그는 씨익 웃으며 손가락으로 아지라파엘의 벨트를 만지작거렸다.


아주 설득력 있는 사악한 책략인걸.” 아지라파엘이 똑같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는 생각에 잠겨 얼굴을 찌푸렸다. “천사를 유혹하는 건 너에게 좋은 성과일까 아니면 나쁜 성과일까?”


“내가 그런 걸 신경쓸 것 같아? 다들 엿이나 먹으라고 해.” 크롤리가 아지라파엘의 벨트 고리에 손가락을 걸어 소파를 향해 그를 끌어 당겼다. 그는 자기가 한 말을 매우 충실히 지키는 악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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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흑 진짜 크롤리 6000년 짝사랑 너무 절절하고,,, 

아지라파엘은 짝사랑한지 80년 밖에(? 안 됐지만 이제라도 확실히 알았으니 다행이죠,,,ㅠㅠㅠ,,ㅠ

아 쌍방삽질 쌍방짝사랑 너무 맛있어 허버헙ㅂㅓ

저는 원문 읽으면서 너무 재밌게 읽었는데 그 재미가 다 전달될 지는 모르겠어요 흑흑 재밌게 읽으셨기를ㅜ

@cutieno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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